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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대한민국 주식시장 거래 방법의 역사
    취미 2020. 4. 10. 00:45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https://www.hankyung.com/finance/article/2018102693131

     

    딱딱이 없으면 주식거래 못했던 시절…전자시세판 등장은 '충격'이었다

    딱딱이 없으면 주식거래 못했던 시절…전자시세판 등장은 '충격'이었다, 한국 자본시장을 뒤흔든 사건 (8) 1983년 공동전산화시스템 가동 1896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반세기 넘게 격탁매매로 거래 �

    www.hankyung.com

     

    ~70년대 : 집단경쟁매매, 격탁매매

     

    * 당시 증권시장은 넓은 강당(입회장)에 많게는 100명 넘는 증권사 대리인이 모여 주문을 쏟아냈다. 고함을 치거나 두 손을 번쩍 들어 ‘손질(손가락으로 희망 가격을 표시)’로 호가를 표시했다. 상황을 지켜보던 거래소 시장 담당 직원이 순간적으로 가격과 물량의 합치점을 찾아 딱딱이를 치면 집단매매가 이뤄졌다. 거래 종목이 적을 때 효과적인 이 방식은 일제강점기였던 1896년 인천 미두(米豆) 취인소(거래소) 때부터 반세기 넘게 증권시장의 풍경을 대변했다.

     

    1971년 : 개별경쟁매매, 포스트매매, 75년부터 집단경쟁매매를 완전히 대체함

     

    * 컴퓨터가 없던 시기 입회장 곳곳에 있는 포스트(단상)에 주문표를 써내면 거래소 직원이 일치하는 주문을 찾아 맺어줬다.

    * 시세 표시는 입회장 벽면에 분필로 쓰거나 숫자 자석을 사용했다. 입회장 밖 증권사 직원들은 거래소에 설치한 수십 대의 전화기에 들러붙어 시시각각 시세 변화를 회사에 전달했다. 지점에서 주문을 낸 고객이 주식 체결 소식을 전해 들으려면 3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게 예사였다. 전국 각지의 영업점들은 대한증권업협회(금융투자협회) 방송요원이 거래소 방송실에서 전하는 음성 유선방송에 귀 기울이며 수십 분 늦은 시세를 칠판에 받아 적었다.

     

    1977년 : 한국증권전산(코스콤) 설립 10여 년에 걸친 완전 전산화 프로젝트 시작

    1979년 : 전자 시세 게시판

    1983년 : 증권 공동 온라인 시스템(SOT:Stock Order Turnaround system) 개발, 증권사 직원이 전화 대신 전산으로 매매주문을 내고 업계가 해당 정보를 공유

    1988년 : 주식 자동매매체결 시스템(SMAT) 가동, 완전 전산화 마침표, 그전까진 거래소에 있는 증권사 직원이 영업점에서 보낸 SOT주문을 확인 후 입회장 포스트로 이동하여 주문표를 적어냈으나 이 과정 모두를 전산으로 연결함

    1997년 : 금융당국의 서비스 허용으로 홈트레이딩 시스템(HTS) 등장, 입회장 육각형 포스트 중단

    가장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(MTS) 등장 

    2016년 : 마지막 전자 시세 게시판(여의도 대신증권) 철거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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